안녕하세요! 2024년 봄과 함께 찾아온 따끈따끈 「참깨 통신」 1호입니다. 앞으로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외국 문학 이야기를 한아름 안고 독자 여러분의 메일함을 두드릴게요. 깨알 같은 소식부터 신간 정보와 편집자 칼럼까지, 다채로운 내용을 기대해 주세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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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자> 시리즈, 『게임 체인저』의 저자 닐 셔스터먼이 방한했다. 그는 2월 24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서울에 머물며 다양한 일정을 소화했다. 25일에는 예스24 새 책 서점 1호 강서NC점에서 독자들과 만났으며, 26일에는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25일 북토크와 사인회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작가를 에스코트하러 간 호텔에서 <닐 셔스터먼 님은 어젯밤 체크인하지 않았습니다>라는 스릴러 소설 속 대사 같은 말을 프런트에서 들었을 때(작은 착오가 있었다) 열린책들 편집자들은 등골이 오싹해지고 수명이 단축되는 것 같았으나, 결국엔 무사히 그와 만나 행사를 잘 마무리했다. 사인회에는 국내에 아직 출간되지 않은 소설 『Unwind』를 포함해 작가의 책을 한 보따리 가져온 열성적인 독자도 있었는데, 닐 셔스터먼은 형형색색의 필기구가 든 필통을 꺼내 놓고 책마다 어울리는 색깔의 펜으로 멋들어지게 사인을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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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 열세 종이 발표되었다.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영어로 출간된 번역 소설 가운데 뽑히는데, 올해 후보작들의 원 출간 국가는 총 열 곳으로 독일, 러시아, 알바니아, 포르투갈, 폴란드, 페루뿐 아니라 한국(황석영, 『철도원 삼대』)도 포함되어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에 눈여겨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라틴 아메리카의 목소리가 강하다. 총 네 종이 라틴 아메리카 작품이다. <두 번째 라틴 아메리카 붐>의 예고일까? 둘째, 이전 수상자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은 이스마일 카다레로, 200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자다. 올해도 수상한다면 그는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두 번 받은 최초의 작가가 된다. 셋째,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서가 아홉 종이나 된다. 새롭고 대안적인 흐름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넷째, 여러 세대의 작가가 함께 명단에 올라 있다. 1936년생부터 1987년생까지 세대 폭이 넓다. 다섯째, 오래된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기가 함께 있다. 후보작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은 2001년에 출간된 도메니코 스타르로네의 『비아 제미토Via Gemito』다. 이는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트레가Strega상을 받은 바 있다. 여섯째, 주제 면에서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이번 후보작들은 딸과 어머니, 헤어진 쌍둥이와 부모를 잃은 아이의 이야기 등을 다루며 가족 생활과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뿌리 깊게 탐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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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https://thebookerprize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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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자랑! 강인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 날카로운 유머 감각이 빛나는 불멸의 작가 안톤 체호프. 그의 중요한 작품 두 편을 엮은 선집 『아내·세 자매』가 열린책들 세계문학으로 출간되었다. 숨은 보석 같은 소설 「아내」는 러시아 대기근 시기에 농민 구제 사업을 펼치려는 주인공을 내세워 <어떻게 사람답게 살 것인가>를 질문한다. 「세 자매」는 체호프의 대표 희곡 중 하나로, 이상을 꿈꾸지만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삶을 그저 인내하는 세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상의 사소한 면면에 주목하는 이 작품들은 뭉클한 감동과 웃음을 주는 동시에, 삶의 고달픔과 수수께끼를 묵직하게 품고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세 자매」의 막바지에 막내 이리나가 읊는 다음의 대사는, 우리가 어디서 헤매고 있든 필요한 순간에 우리를 찾아와 줄 힘을 지닌 것만 같다.
시간이 흐르면 왜 이 모든 일이 일어났고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모두 알 수 있을까. 어떤 비밀도 없이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살아야겠지…….(21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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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쿵덕쿵덕 『안나 카레니나』>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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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절구로 찧을 책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236번, 237번인 『안나 카레니나』로, 무려 1878년에 나온 명작 중의 명작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상권 11면)
불행한 가정의 대표가 안나라면, 행복한 가정의 대표는 레빈이다. 나는 열정에 이끌려 불륜을 저질렀다가 파멸하는 안나보다 선량하고 순수한 레빈을 언제나 더 좋아했다.
결혼 후, 키티가 출산을 할 때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레빈이 거의 혼이 나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장면은 우습기도 한 한편, 코끝이 찡하도록 감동적이다. 레빈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내를 도저히 보지 못하고 머리를 움켜쥐고서 이 방 저 방을 오가기도 하고 시키는 대로 가구를 옮기기도 하며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22시간을 보낸다.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을 때, 레빈은 어리둥절해한다.
그런데 아기는? 어디서, 왜 나타난 것이지? 저 아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하권 496면)
그는 아기를 낯설어하며, 아기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즉각적으로 솟아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실망한다. 그러나 어느 비 오는 날, 키티와 아들 근처에 벼락이 떨어지는 걸 보고 레빈은 부지불식간에 신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야 자신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새로운 감정은 내가 꿈꾸던 것처럼 나를 바꿔 놓지도, 행복하게 만들지도 않았고, 불시에 깨달음을 안겨 주지도 않았어.(하권 677면)
레빈은 새로운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레빈, 대지주, 내성적인 사내다. 그는 특별히 무언가를 새롭게 깨닫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 동일한 사람으로 동일한 시간을 계속 살아가면서도, 그 매 순간이 선(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 그리고 그 의미를 삶 속에 불어넣을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강렬하게 인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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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정과 작은 새」,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50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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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하고 정직한 레빈이기에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일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저 담담히, 언제나와 같이,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가면서 삶의 순간순간들에 의미를 불어넣는 레빈의 미래를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언뜻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에 치여 생기를 잃은 우리들의 삶 또한 응원하고 싶어진다.
삶이 재미없고 시시할 때,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일상이 총천연색으로 빛나며 세상이 달리 보일지도 모르니까. 👉전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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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메르츠보의 꿈>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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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고요한가?
앙투안 볼로딘 소설 『메블리도의 꿈』에서 주인공 메블리도가 거주하는 구역인 제4닭장의 밤은 무덥고 축축하며 썩은 냄새가 나고 소란스럽다. 밤새 고함치는 정신병자들, 의미 불명의 구호를 외쳐 대는 볼셰비키 노파들, 울고 웃는 돌연변이 새들, 그런 친밀한 이웃들과 함께 우리는 땀을 뒤집어쓴 채 깨어 있거나 악몽을 꾼다. 수면 부족과 악몽은 심박수를 빠르게 하고 어떤 날은 한밤중에 심장이 세차게 뛰는 느낌에 얕은 잠에서 벌떡 깨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가져다 대지 않고도 BPM을 잴 수 있을 정도였다. 체감상 메르츠보Merzbow의 2020년도 앨범 「EXD」에 수록된 트랙 「RST Mix4」와 비슷한 빠르기였다. 킥 드럼이 왜곡되어 두꺼운 질감으로 쿵쿵거리고 찢어지는 금속성 소리가 반복되면서 쥐가 찍찍대거나 새가 짹짹대는 것 같은 와중에 점차 빈틈없는 폭우를 쏟아붓는 그 곡은 제4닭장의 소음을 연상케 한다. 메르츠보는 새 사랑으로 유명하고 메블리도는 새와 대체로 악연이 있다. 나는 새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메블리도의 꿈』에서 밑줄 그은 많은 문장이 메블리도, 말리야, 디플레인과 관련되어 있다. 메블리도는 베레나를, 말리야는 야샤르를, 디플레인은 메블리도를 다시 만나고 싶어 미친 지경이지만 그들의 바람은 전부 죽음이나 죽음 비슷한 것으로 가로막혀 있다. 20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브라질 작가 힐다 힐스트Hilda Hilst의 소설 『A Obscena Senhora D』에서 주인공은 죽은 에후드를 떠올리며 묻는다. <그 흔적, 창백한 뺨 위 조그맣게 긁힌 자국, 그 흉터는 다른 얼굴로 옮겨지기라도 한 걸까?> 이러한 종류의 말을 실은 소리는 안쪽을 향해 울려 퍼진다. 말리야의 한밤중 기도처럼. 그는 <머릿속에서 중얼거리고 울부짖>지만 그 모든 일은 <침묵 속에서 펼쳐>질 따름이다. 그의 기도는 신이 아니라 그 어떤 공유의 가능성도 소멸된 사람, 기도의 원인으로 곧장 향한다. <어서 와, 있는 힘을 다해 돌아와.>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오직 과도한 침묵>뿐이다.
음악가 조율은 2021년에 발표한 앨범 「Earwitness」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내 안에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증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가?> 첫 번째 트랙 「A Stage」에서 나는 증언을 위한 무대 혹은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격한다. 비워진 공간에 파도가 밀려오고 종소리가 신호를 알리면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새소리와 함께 아침이 찾아온다. 두 번째 트랙 「Marginalia」를 채우는 새소리에 관해 묻자 조율은 먼 정글에 사는 새가 우는 소리의 사운드 샘플을 썼다고 알려 줬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일 것이다. 하지만 생김새를 알 것 같았다. 내 왼쪽 무릎 바로 위에 새겨진 둥근 새가 우는 소리를 들어 봤다. 👉전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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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볼로딘 © Didier Gaillard | 힐다 힐스트 © Chico Albuquerque | 조율 © Soma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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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 1 (등장순)
앙투안 볼로딘, 『메블리도의 꿈』(이충민 옮김, 워크룸 프레스, 2020)
메르츠보, 「EXD」(Room40, 2020)
힐다 힐스트, 『A Obscena Senhora D』(열린책들 근간)
조율, 「Earwitness」(Helicopter Records, Psychic Liberation,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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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준비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참깨 통신」의 시작을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봄날의 밝고 따뜻한 기운이 독자 여러분의 마음에도 깃들기를 바라 봅니다. 한 달 뒤인 4월 26일 금요일에 다시 만나요. 이만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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