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추석 연휴 때까지만 해도 한여름 같았는데, 이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매년 9월이면 미국과 프랑스에서 굵직한 문학상의 후보들이 하나둘 발표되기 시작하는데요. 이번 호는 프랑스의 공쿠르상, 미국의 전미 도서상 후보들을 훑어보는 데서 출발해, 시지프가 끝없이 바위를 굴리는 모습을 보며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우리 삶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는 2050년의 우리는 무얼 하며 살고 있을지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합니다. 그럼 9월의 「참깨 통신」, 시작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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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공쿠르상 1차 후보작 열세 종이 발표되었다. 프랑스 문학상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되는 공쿠르상은 작가이자 비평가, 출판인이던 에드몽 공쿠르의 유언에 따라 1903년부터 아카데미 공쿠르의 설립과 함께 제정되었다. 매년 연말 그해 발표된 작품 가운데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며, 역대 수상자로는 마르셀 프루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 앙드레 말로, 미셸 투르니에, 로맹 가리,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이 있다. 이번 목록에 이름을 올린 후보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는 가엘 파이의 『Jacaranda』와 국내에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로 처음 소개된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Jour de ressac』가 있다. 가엘 파이는 르완다 내전의 후유증을 소재로, 잔혹한 역사를 지녔으나 서로 대화하고 용서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그려 내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스테디셀러 성장 소설 『작은 나라Petit pays』(가제)는 올 11월 열린책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케랑갈은 제2차 세계 대전의 폭격으로 붕괴된 도시 르아브르를 중심으로 과거의 유령들과 재회하며 기억과 글쓰기의 관계를 다룬다. 한편, 2023년 공쿠르상 수상 작가인 장바티스트 앙드레아는 데뷔 소설 『나의 여왕』으로 열린책들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의 2023년 공쿠르상 수상 작품인 『그녀를 보살피다Veiller sur elle』 (가제) 또한 열린책들 근간으로 나올 예정이니 부디 많은 기대를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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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도서상 1차 후보작 목록이 발표되었다. 1950년, 미국에서 출간된 도서들 중 최고의 소설, 비소설, 시집을 선정하며 시작된 이 상은 책과 독자를 연결하고 출판 분야의 공로자들을 기리는 등 다방면에서 독서와 출판 산업을 장려한다는 비전을 지녔다. 2024년 전미 도서상 소설 부문의 최종 수상작은 10월 1일에 발표될 예정이며, 1차 후보로는 열 권의 책이 선정되었다. 이 중 한국 독자들에게 알려진 저자로는 레이철 쿠슈너(『마스 룸』), 미란다 줄라이(『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그리고 히샴 마타르(『시에나에서의 한 달』 외)가 있다. 1차 후보작 중 두 작품, 퍼시벌 에버렛의 『James』와 레이철 쿠슈너의 『Creation Lake』는 2024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라가 있다. 『James』는 고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유산을 물려받은 동시에 그것을 영리하게 비튼 이야기로, 저자가 천착해 온 인종과 정체성의 문제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극찬받았다. 『Creation Lake』는 수상한 임무를 맡아 프랑스에 파견된 30대 여성 비밀 요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으로, 블랙 유머와 통찰력이 돋보이는 페이지터너다. 영국과 미국에서 가장 이름난 도서상 후보에 모두 오른 소설인 만큼 두 작품 모두 국내에 소개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히샴 마타르의 『My Friends』 또한 문학 애호가(바로 「참깨」 독자 여러분!)라면 사랑에 빠질 만한 소설이다. 올해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으며 오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카다피 군부 독재 시절 리비아에서 런던으로 망명한 세 친구의 우정을 섬세하게 그려 내며, 절제된 언어로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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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재현했다는 극찬을 받은 『중요한 건 살인』의 괴팍한 천재 전직 형사 호손과 어리바리 소설가 호로위츠 콤비가 돌아왔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바로 잘나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 자신의 집에서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된 그의 곁에는 깨진 와인병이 놓여 있고 벽에는 <182>라는 알 수 없는 숫자가 초록색 페인트로 적혀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며칠 전 이혼 소송 상대로부터 와인병으로 치겠다는 협박을 받은 터다. 누군가 집에 침입한 흔적도, 범인으로 보이는 지문도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증인들 여섯 명은 새빨간 거짓말만 늘어놓고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다. 전작보다도 더욱 강력해진 미스터리 속에 숨겨진 깜짝 놀랄 만한 복선과 치명적인 함정! 당신은 호손과 호로위츠가 내미는 도전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관전 포인트 1. 호손의 매력은 어디까지인가? 무뚝뚝하고 정이 안 가는 인간이지만 추리하는 장면에서는 등 뒤로 후광이 보인다. 관전 포인트 2. 호로위츠는 2023년 추리 소설 분야의 가장 영예로운 상인 에드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소설 속에서 추리하는 그의 모습은 조금 불쌍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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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쿵덕쿵덕 『시지프 신화』>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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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절구로 찧을 책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255번인 『시지프 신화』로, 1942년에 출간된 알베르 카뮈의 철학 에세이다. <알베르 카뮈>라는 이름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단어가 두서없이 떠오른다. 결핵, 축구, 가난, 젊음, 태양, 알제리, 부조리, 자유, 반항, 자동차 사고.
그는 1913년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서 프랑스계 이민자로 태어났다. 보육원 출신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징집되어 전사했으며,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청소부로 일해서 아이를 키웠다. 카뮈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축구를 좋아했지만 열일곱에 결핵이 발병하면서 그만뒀고, 스물일곱에 첫 소설 『이방인』을 펴냈으며…… 마흔다섯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마흔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알베르 카뮈는, 세상이 <살 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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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인지 보이는 사진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알베르 카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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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멸망하지 않은 지구, 대학에서 문학 창작 학회에 들어간 나는 어쩌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여기서는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음침하게) 기대하며 이런저런 글을 써서 냈는데, 선배 한 명이 그런 날 몇 달 지켜보다가 『시지프 신화』를 선물해 주었다. 자기도 바로 작년에 다른 선배한테 이 책을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을 읽으며 어째서인지 조롱당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를 거의 증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미워하게 됐다. 산꼭대기로 돌을 굴리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 하지만 꼭대기에 다다른 돌은 금세 다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는 그걸 다시 힘겹게 밀어 올린다. 에세이는 이렇게 끝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울 수 있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191면)
운명은 그의 것, 바위도 그의 것, 부조리한 인간이 그의 고통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든 우상은 입을 다문다고? 나는 내 삶의 주인이라고? 처음 읽었던 『시지프 신화』는 냉소적이고 논리적으로만 그럴싸한 궤변으로 여겨졌고, 난 죽음을 향한 더 강한 욕구와 허무함만을 느꼈다. 내 삶에 내 뜻으로 주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여겼던 나는,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인 이 삶을 행복으로 느낄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풀어놓자면 구구절절하고 지루한 우여곡절을 겪은 뒤 나는 카뮈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됐다. 수많은 일들과 사람들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카뮈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건 삶 전체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사는 게 벅찰 때마다 다시 읽고 또 읽은 이 에세이에서, 카뮈는 자신의 의지로 삶을 속속들이 겪어 내고자 하는 열망을 말하고 있었다. 눈을 떠서 세계의 모순을 직시하고, 모순이 사라질 수 있다 무책임하게 낙관하지 않으며, 모순에 길들지 않고, 그럼에도 <출구가 없는> 상태로 그 모순을 적극적으로 살아 내는 인간의 모습. 오랜 시간 다시 읽으면서 시지프라는 인물은 궤변으로 무장한 정신 승리자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간적 영웅으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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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가끔은 인생이 너무 길고, 사는 게 귀찮게 느껴진다. 아이고, 집에 가면 이 몸을 박박 씻어야겠지, 이도 닦고, 머리도 감고, 배가 고플 테니 음식도 먹어야 해.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청소도 하고 내일 입을 옷이 없으니 빨래도 해야 하잖아. 목이 너무 아프네, 주말엔 병원에 가야겠어. 지겹다, 지겨워. 사는 거 지겨워.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시지프를 생각한다.
내 운명, 내 삶의 조건을 내가 책임지는 자유를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던 돌멩이가, 그 묵직한 돌멩이가 그저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무거운 건 맞지만,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살기로 결정했으니까. 이 부조리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했으니까. <살기로> 한 나. 정말이지 난 멋진 사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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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리지 마, 왕자님!
9월 7일 기후 정의 행진에 다녀와서
― 편집자 김이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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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 수록된 「고섬 핸드북」에서 폴 오스터는 낯선 동료 시민에게 말 걸기 좋은 주제로 날씨를 꼽으며 말한다. <날씨는 차별하지 않는다. 나에게 비가 내리면 당신에게도 내린다. 우리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와 달리 날씨는 인간이 만든 상태가 아니다.> 날씨는 아무 생각도 없으니 차별도 안 하지만 그 영향이 미치는 방식은 명백히 차별적이어서, 그 비가 정말 같은 비냐고 신림동 반지하방에 비가 내리면 뉴욕 고급 아파트에도 내리는 게 맞냐고 시비를 걸게 된다. <살인적인> 폭염이나 폭우라고 말할 때 그 수사는 과장 섞인 클리셰일 수도 있고 문자 그대로 목숨을 위협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 간극도 이상한 날씨도 우리가 직면한 대부분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었다. 그의 책의 편집자로서 내가 아는 한 폴 오스터는 물론 이 말을 이해할 것이고 좀 오해의 소지가 있게 말해서 그렇지 본인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9월 7일 토요일, 기후 정의 행진에 앞서 열 명쯤 되는 친구들과 모여 공작 시간을 가졌다. 종이 박스를 찢어 낸 골판지에 크레파스로 쓰거나 그리는 일에는 순수한 즐거움이 있어서 정신 차리고 보니 피켓을 세 개째 만들고 있었다. 피켓을 앞뒤로 목에 걸고 강남역 집회 현장에 도착해 행진 대오의 꼬리 쪽에서 걸었다. 조직 위원회 추산 3만여 명이 10차선으로 이루어진 강남대로의 2~3차선을 겨우 차지해 좁고 긴 행렬을 이루었고, 우리는 구호를 외치면서 잡담하면서 깃대를 번갈아 들면서 이웃들을 둘러보면서 빌딩 숲을 지났다. 즐겁고 숨이 막히고 약간 스트레스 풀리고 든든하기도 하고 또 막막했다. 비싼 땅 위에 세워진 거대한 기업 건물들은 모두 비슷하게 무심한 인상을 풍겼다. 도스토옙스키가 1862년에 프랑스를 여행하며 목격했다는 부르주아 사회의 <나 죽은 뒤에 홍수가 나든 말든> 풍조를 형상화하면 그런 광경이지 않을까? 이제는 <나 죽은 뒤에>조차도 아니지만. 거기에는 폭염 속에서 안전 지침 없이 에어컨을 설치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나 더 많은 상품을 더더더 빠르게 배송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던 물류 센터 노동자들의 죽음, 자신들이 초래하고 가속화하는 재난을 깔보는 듯한 자본의 번들거림이 있었다.
「농장 노동자들과의 춤Dance with Farm Workers」(2001)은 중국의 안무가 원후이Wen Hui의 퍼포먼스 작품이고, 비디오 아티스트 우원광Wu Wenguang이 준비 과정과 리허설, 본 공연을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담아냈다. 국립 현대 미술관 기획전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을 찾았다가 그 영상의 편집본을 보게 되었다. 무대는 베이징시의 현대화 정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한 전 방직 공장이며, 농민 출신 노동자 서른 명이 주인공으로 나선다. 그들은 쓰촨성 빈민 지역 출신으로 베이징에 이주해 재개발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다. 짓눌린 채 부대끼다 총알처럼 튀어 나가려는 몸짓. 쥐처럼 경계하며 천장을 기는 몸짓. 죽은 동료를 떠나보내는 노래. 리허설의 한 순간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퍼포머 위로 다른 퍼포머들이 드럼통을 굴리며 지나간다.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이었다면 톰이 종잇장처럼 납작해졌을 것이다. 누워 있던 퍼포머가 말한다. <방금 드럼통이 너무 높이 지나갔어요.> (그러면 어색하잖아요.) 드럼통을 굴리던 퍼포머들이 말한다. <이게 얼마나 무겁다고요.> (그러면 아프잖아요.) 퍼포머들이 만들어 냈던 몇 센티미터의 틈을 더는 틈이라고 할 수 없을 때까지 넓혀 나가는 상상. 무서운 속도로 구르며 「굴려라 왕자님」에서처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몸집을 불리려는 드럼통의 경로를 방해하면서……. (굴리지 마, 왕자님!)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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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 4(등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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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024년 9월 27일)을 기준으로 올해가 95일 남았다고 해요. 얼마 전에 완결된 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 속 백은영의 대사처럼, <인생은 너무 길>어 보이는데 시간은 너무 빠르게만 느껴집니다. 매년 가을이 오면, 갑자기 시원해진 아침 공기나 색이 변해 가는 나뭇잎 같은 것들이 시간의 흐름을 다른 계절보다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해줍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그럼 10월에 다시 만나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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