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두 장마철에 별 탈 없이 지내고 계신가요? 저희는 지난 6월 말에 열렸던 서울 국제 도서전을 무사히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오랫동안 그 여운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끊긴 상황에 행사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책을 향한 사랑 덕분이었습니다.
「참깨 통신」 5호를 시작하기 전에 잠깐! 도서전 현장에서 배포했던 심심풀이 <열려라, 십자말풀이!>를 공유합니다. 외국 문학을 사랑한다면 한번 도전해 보세요. 정답은 레터 말미에 공개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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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에서 지난 7월 9일부터 약 일주일에 걸쳐 <21세기 최고의 책> 1백 권을 공개했다. 이 순위는 최고의 책 열 권을 뽑아 달라는 요청에 대해 록산 게이, 스티븐 킹, 이민진 등을 포함한 503명의 문인과 관계 인사 들이 보낸 답변을 바탕으로 했다. 이 목록이 공개된 후 다양한 반응들이 뒤따랐다. 2000년 1월 1일 이후로 발매된 책이라는 기준을 두고 2000년은 엄밀히 따지면 21세기가 아니라는 태클도 있었고, <21세기 최고>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아직 너무 이르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었다. 문학 전문 웹사이트 「리터러리 허브Literary Hub」는 <『뉴욕 타임스』가 놓친 것>이라는 제목 아래 자체적으로 일흔한 권의 책을 뽑아 게시하기도 했다. 한 독자는 『뉴욕 타임스』와 「리터러리 허브」의 목록에 웹 매거진 「벌처Vulture」에서 선정한 최고의 책 1백 권을 더하면 훌륭한 독서 목록이 될 거라는 답글을 달았다.<최고의 무엇 000선> 같은 목록을 보면서 개인(혹은 애호가)은 공감과 반감을 번갈아 느끼기도 하고, 매체(혹은 상품)의 공급자는 공짜 홍보 문구가 생긴 격이니 신이 나기도 한다. 동시에 이런 공신력 있는 언론에서 발표하는 목록은 일종의 게이트 키핑, 좀 더 과장해 비유하자면 노아의 방주처럼 나머지 것들을 탈락시키는 것 같은 배제의 법칙이 늘 함께하기 마련인데, 그렇기에 어쩌면 중요한 것은 『뉴욕 타임스』가 제안하듯 <당신만의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사심을 담아 이런 질문을 제안할 수도 있겠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열린책들 최고의 책 10선>은?
<『뉴욕 타임스』 21세기 최고의 책> 목록 중 열린책들 출간작(근간 포함) 총 7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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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영미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의 신작 장편소설. 독특한 서정성과 세상을 향한 고요한 애정이 빛나는 『고요의 바다에서』는 20세기부터 25세기까지 5백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엮어 낸다. 집에서 쫓겨나 먼 나라로 떠나온 20세기 초의 청년 에드윈, 캠코더를 들고 집 근처 숲을 산책하는 20세기 말의 여자아이 빈센트, 붐비는 비행선 터미널을 가로지르는 22세기 말의 작가 올리브, 그들은 모두 시공간이 요동치며 뒤섞이는 한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25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무렵, 개스퍼리는 그 기이한 현상의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 시간 여행을 감행하는데……. 이 책을 먼저 읽은 김보라 영화감독이 남긴 평을 들어 보자. <작가는 마치 묘지에서 지나간 시간을 관조하듯, 세상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투명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삶의 틈 속에 빠진 인류에게 사려 깊은 러브레터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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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빛 | 장자크 상페 지음 | 양영란 옮김
상페 하면 여름, 여름 하면 상페! 『여름의 빛』에는 우리의 기억 한편에 녹아 있는, 언제고 되돌아가 한껏 누리고 싶은 여름의 반짝이는 풍경이 모두 담겨 있다. 장자크 상페는 『꼬마 니콜라』로 대성공을 거둔 다음, 첫 번째 작품집이 나올 때 이미 프랑스에서는 데생의 일인자로 꼽혔다. 또한 『뉴요커』의 표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가장 중요한 기고 작가이기도 했다. 바캉스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모은 이 책에는 상페만의 시원하고 찬란한 여름의 풍경과 한여름 휴가지의 정경을 거닐며 자신만의 휴식을 취하는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의 일상이 그려져 있다. 여름의 반짝이는 해변, 그늘 아래서 누리는 낮잠,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음악, 별장에서의 여유로운 휴식, 달빛 아래에서 추는 춤까지…… 『여름의 빛』은 일상의 한순간을 마법처럼 펼쳐 보이며, 가장 완벽한 여름휴가의 시간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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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덕쿵덕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 편집자 이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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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절구로 찧을 책은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124번인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로,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처음 시도한 장편소설이다. 처음 <시도>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미완성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물네 살에 단편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문단의 뜨거운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도스토옙스키는 그해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집필을 시작해 스물여덟 살에 그 일부를 발표한다(<네토츠카>가 아닌 <네또츠까>인 이유는 열린책들이 예전에 독자적인 러시아어 표기법을 썼을 때 출간된 책이기 때문인데, 여기서는 책 속 표기법을 따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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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또츠까가 제대로 세상을 인식하기도 전인 아주 어릴 적, 친아버지로 알고 자란 새아버지 예피모프를 네또츠까는 순수하게 사랑하게 된다. 예피모프는 기이한 인간으로, 그는 본래 클라리넷 연주자였는데 우연한 계기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고 그야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바이올린 천재라는 사실에만 푹 빠져 악단에 제대로 출근하지도 않고 매일 술만 마시며 불량한 무리와 어울린다. 그러면서도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마을에 순회를 온다거나 하면 어떻게든 흠을 잡아서 그 사실을 떠벌리고 다녀야만 만족할 정도로, 그는 형편없는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경멸했지만 네또츠까는 새아버지를 세상의 핍박을 받는 가련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지극히 사랑한다.
아버지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하지만 전혀 아이답지 않은 기묘한 사랑이 시작되었다. 만일 이 사랑에 대해 내가 내리는 정의가 어린아이로서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것을 차라리 연민의 감정, <모성>의 감정이라 말하고 싶다.(44면)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한 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찾아오고, 그 연주를 들은 예피모프는 절망한 채 집에 돌아온다. 너무나 훌륭한 연주가 자기를 기만하면서 삶을 지탱하도록 만들던 모든 것을 명명백백히 폭로했고, 예피모프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처참한 마음으로 집에 온 예피모프를 맞이한 건 고된 삶에 숨을 거두고 만 아내의 시신이었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집에 그대로 버려둔 채 네또츠까를 데리고 떠나려 한다. 그러나 네또츠까가 죽은 어머니가 불쌍하다며 집에 돌아가 누가 돌봐 주게 하자고 말하고, 예피모프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라고 한 뒤 도망쳐 버린다. 네또츠까는 그런 예피모프를 뒤쫓다 쓰러지고, 예피모프는 이후 정신 착란으로 발작으로 일으켰다가 얼마 후 죽는다.
나는 네또츠까를 보며 그녀가 사랑에 재능이 있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네또츠까는 사랑에 빠지면 고통스러울 정도로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 그 사랑이 책을 처음 읽은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라서 도대체 그게 무엇인가, 나는 느낄 수 있는 것인가, 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간절히 욕망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어쩌면 이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네또츠까가 보인 것 같은 감정을 느껴 본 적은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의 나는 정신을 놓아 버릴 정도로 격렬한 사랑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조금 의심을 하기도 한다(사실 가스라이팅을 당하거나 심리적 지배 상태에 놓이면서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의 결합으로만 그런 감정을 품는 게 가능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상상을 한다. 색깔이 아주 밝고 선명하며 눈부시고 빛나는 <사랑>이라는 물체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상상이다. 그것은 순수하고 완전하며 뜨거운 열이 난다. <사랑>을 손에 들어 본다. 그리고 한입에 꿀꺽 삼킨다. 이윽고 말라 있던 내 몸이 비를 맞은 듯 부드러워지고 손끝에서는 싹이 돋아난다. 그러면 내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그 격렬한 사랑을 경험할 희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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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천각형의 별과 만나기>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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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 전화 통신 연극 「구멍 난 밤 바느질」은 배우 배선희가 <쓰고 연기>한 작품이다. <연극은 어디까지 멀리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휴대 전화를 매개로 7월 한 달간 총 열다섯 차례 공연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열다섯 번의 공연 중 하나의 관객이 될 수 있었고 그리하여 7월 13일 토요일 밤 9시를 앞두고 전화를 기다리며 객석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바깥에서 차 소리와 술 취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인사해야 하나 긴장한다. 9시 정각에 전화가 걸려 오고(여보세요) 연극은 인사말 없이 시작된다.
예상치 못한 구멍에 빨려 들어가기. 어렸을 적 맨홀 구멍에 빠진 기억을 꺼내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관객을 그 맨홀 구멍과 닮은 암흑으로 끌어들인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에 둘러싸여 절대 꺼지지 않는 촛불 같은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관객을 안내한다. 어린 시절의 화자가 있는 부산의 서동으로. 그곳에서 우리는 옥상 너머로 내던져지는 고양이와 미친 여자들과 칼을 든 남자들과 칼을 든 남자들을 상대하는 여자와 온몸이 얼어붙은 채 창문에 매달린 화자와 동생을 만난다. 여자는 죽었을까? 아니, 여자는 잘 살고 있대. 그리고 또 어린 시절을 떠나온 화자가 있는 서울의 낙산으로. 그곳에서 우리는 꼽등이가 너무 나오는 반지하방과 머리를 가르자 금붕어를 쏟아 낸 냉동 낙지와 초파리알로 가득 찬 냉장고와 곰팡이 핀 벽, 그러니까 내가 처리하지 않으면 결코 처리되지 않을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그것들이 더럽거나 징그러워서가 아니라 내 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 갑자기 지겹고 막막해서 구역질하고, 화자는 그것과는 상관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이유로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먹은 것들을 토해 낸다. 침을 닦고 입을 헹군 우리의 발밑에서는 지렁이가 꿈틀거린다. <바닥에서 몸을 뜯고 싶어 하는 것처럼> 몸부림치던 지렁이가 마지막 숨을 거두자 우리는 구멍 속에서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겨울의 구멍가게. 담배를 사러 들른 가게의 계산대에는 못 보던 할머니가 앉아 있고 할머니는 패딩 조끼를 입었으며 패딩 조끼에는 구멍이 나 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여든하나, 여든둘, 여든셋, 여든넷, 여든다섯……. 구멍 세기가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던 중에 곧 구멍 세기는 끝나 버리고 촛불을 후 불어 끄듯 연극은 하나의 막을 내린다. 나는 할머니의 패딩 조끼에 난 여든다섯 개의 구멍이 우리가 빠졌던 구멍으로부터 깃털처럼 삐져나오는 여든다섯 개의 통로였다고 느낀다.
(......)
그는 어느새 낙산 공원 꼭대기에 도착해 눈앞에 펼쳐진 야경을 그려 보였다. 나는 엎드려 누워서 책장에 꽂힌 책들과 야자수를 닮은 식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가 들려주는 낙산의 풍경을 내려다봤고 밤 산책의 냄새를 맡았다. 중첩된 감각 안에서 전화 통신 연극의 출발점이 된 질문이 <연극은 어디까지 멀리 (관객을 찾아)갈 수 있을까?>와 <연극은 어디까지 멀리 (우리를 데려)갈 수 있을까?>로 나뉘었다가 다시 포개졌다. 그는 내 방에 찾아와서 부산의 서동인 것만은 아니고 서울의 낙산인 것만은 아닌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가고 있었다. 구멍 세기처럼 아파트가, 소음이, 공기가, 주변의 나무와 풀과 연인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영원히 듣고 싶다고 바라던 중에 그가 그런데 낙산 공원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고 했다. 뭐예요? 그 순간 ― 구멍 속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무섭게 되돌아왔다.
이제 곧 천각형의 별이 나타날 거예요.
목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자리에 남아 거대한 천각형의 별을 올려다보았다. 자세히 보니 그 주변 밤하늘의 수많은 별빛이 번진 선들인 줄 알았던 것들은 솜씨가 제각각인 바느질 자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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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민승남 옮김(을유문화사, 2023)에 나오는 표현. <그녀는 자신의 몸이 아닌 것, 빛나는 것을 토하고 싶었다. 천각형의 별.>(145면) 「구멍 난 밤 바느질」(2024)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저 아래 끝없이 펼쳐진 도시의 불빛이 《천각형의 별》처럼 정말 아름다웠어. 아, 천각형의 별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쓴 『별의 시간』에서 발견한 표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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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 3(등장순)
배선희, 「구멍 난 밤 바느질」(2024)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민승남 옮김(을유문화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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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7월에도 「참깨 통신」과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멋진 여름 보내시길 바라며, 한 달 뒤에 다시 만나요. 이만 총총.
<열려라, 십자말풀이!> 정답
세로 풀이 1 여름 방학 | 4 드라큘라 | 7 곡식 | 8 베네치아 가로 풀이 2 참기름 | 3 볼드윈 | 5 방앗간 | 6 신곡 | 9 볼라뇨 | 10 백치 | 11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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