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밝고 푸른 5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참깨 통신」이 찾아왔습니다. 아직은 선선한 밤에 숨을 천천히 크게 쉬면서 동네를 산책해 보면 어떨까요? 열린책들 대표 저자 중 한 명인 폴 오스터 타계 소식에서 출발해, 혼자 있고 싶은 개구리 이야기로 끝나는 3호의 흐름을 따라 함께 걸어 봐요.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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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의 대표 저자이자 뉴욕의 <슈퍼스타 문인>이었던 폴 오스터Paul Auster가 타계했다. 2024년 4월 30일 저녁, 그는 자택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책들에 둘러싸인 가운데 향년 77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1947년 뉴저지주 뉴어크의 폴란드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폴 오스터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뒤 파리로 건너가 번역으로 생계를 꾸렸다. 1974년 귀국해 첫 시집 『Unearth』를 발표했고, 1980년 뉴욕에 정착한 후 집필 활동을 이어 가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작품은 먼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책장에 꽂혔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폴 오스터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미국 문학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폴 오스터의 작품은 미국 문학의 사실주의적 경향과 신비주의적 전통,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사색적 요소를 한데 아우르며 <현대 미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그려 낸 우화>라고 불릴 만큼 일상과 사회상, 열망, 좌절, 고독, 강박을 빼어나게 형상화했다고 평가받는다.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는 현장감과 은은한 감동을 가미하는 천부적 재능을 갖춘 폴 오스터는 문학적 기인이라 불릴 정도로 개성 있는 독창성과 담대함,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 감각을 선보여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작가>, <가장 훌륭한 문장가>라는 찬사를 받아 왔다.
한편 사람들은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 역시 사랑해 왔다. 이를테면 작가 루시 샌티Lucy Sante는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폴 오스터 헌정 글에서, 그가 낯선 이웃이었던 자신을 문학인들이 가득한 저녁 자리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초대해 <온 동네가 나를 반겨 주는 것처럼> 느끼게 해줬다고 회상한다. 폴 오스터는 다양한 사람들이 분야를 뛰어넘어 서로 만나게 하고 그들에게 열정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사람들의 말에 늘 귀 기울이고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던 폴 오스터가 지상이 아닌 또 다른 곳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가족, 친구와 만나 호방한 웃음으로 떠들썩한 만찬을 즐기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의 마지막 소설 『바움가트너』(열린책들 근간)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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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4 3 2 1』은 폴 오스터가 모든 문학적 재능을 야심 차게 담아낸 역작으로, 그는 <바로 이 책을 쓰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온 것만 같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주인공 퍼거슨의 삶을 탄생 전후부터 청년기까지 네 가지 버전으로 세밀하게 그려 낸 이 성장 소설은 <모든 영광과 불명예를 아울러 20세기 미국의 경험을 거침없이 탐구하는 진심 어리고 매력적인 이야기>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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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일 뿐 아니라 에세이스트이자 시인, 번역가,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던 폴 오스터가 1967년부터 2017년까지 반세기에 걸쳐 쌓아 올린 산문 중 대표작을 선별해 엮은 선집이다. 에세이, 서문, 편지 등 다양한 형식을 넘나들며 예리하고 지적이며 유머를 잃지 않는 언어로 문학과 글쓰기, 일상과 정치, 그리고 삶에 대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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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달의 궁전』은 폴 오스터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삶을 소진하며 살아가는 젊은이 마르코. 한 번의 삶을 말살하고 자신을 재창조한 노인 토머스. 그리고 몸집이 비대해질 수록 마음이 점점 움츠러드는 중년의 솔로몬. 인생을 배워 나가는 이 세 탐구자들의 초상을 매혹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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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 | 모드 방튀라 장편소설 | 이세욱 옮김
이것은 <사랑>일까?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한 프랑스 문단의 신예, 모드 방튀라의 장편소설 『내 남편』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남편을 <언제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화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남편을 더 사랑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밀회하고, 남편의 모든 잘못을 수첩에 기록하며 그에 맞게 은밀한 형벌을 내린다. 이 평범하지 않은 애정의 기록은 월요일에서 일요일로 이어지며 점점 불안한 진폭을 그리다가, 이내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장면에 다다른다. 프랑스에서만 10만 부가량 판매되고 12개 언어로 번역된 이 소설은 보편적 사랑의 정동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관계의 역학을 유머러스하고도 예리하게 그려 내는 데 성공하며 프랑스 비평가들이 수여하는 <첫 소설 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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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사이클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주파한 『뉴욕 3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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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은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 있는 방」 세 편의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보면 서로 관련이 없는 듯하면서도 다 읽고 나면 비로소 모든 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리의 도시」는 한 추리 소설 작가가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고 탐정 역할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사실 이 작가는 아내도 아이도 잃은 뒤 원래 하던 일을 손에서 놓고 생계유지를 위해 추리 소설을 쓰면서 그저 <껍데기>만 남아 숨만 쉬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퀸)과 추리 소설가(필명 윌슨)를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오해받은 탐정(오스터) 노릇을 하기 위해 탐문 수사를 하느라 <다크>가 되기도 하고 <스틸먼>이 되기도 하며 아예……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럼 대체 정체가 뭘까 싶은 이 사람은 이야기 초반부에 탐정 일을 위해 빨간 공책 하나를 사서 결국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 공책에 뭔가를 적는다. 처음엔 분명 탐문 기록을 썼지만, 나중엔 아주 다른 것이 적히게 된다.
그가 쓰는 것은 별, 지구, 그리고 인류에 대한 그의 희망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자기가 적고 있는 말들이 자기에게서 단절되었다고, 이제는 세상의 일부로서 돌이나 호수나 꽃처럼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되었다고 느꼈다. 그것들은 이제 그와는 아무 상관도 없었다. ― 193면
줄거리를 소개하면서 나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빨간 공책, 이 새빨간 공책이다. 나머지 인물이며 플롯이며 사물들은 중요하지 않다. 그 중요하지 않은 것에 폴 오스터가 정말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담겨 있긴 하지만, 나에게는 빨간 공책만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빨간 공책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세상의 일부로서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것이 되는 말들이란 어떤 것일까. 하나하나의 문장이 그 전의 문장을 지워 버리는 글이란, 하나하나의 문단이 다음 문단을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만드는 글이란 어떤 걸까. 빨간 공책에 적힌 글들은 글쓴이가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되었기에 글로서 어쩌면 오롯이, 그랜드 캐니언처럼 스스로 서 있는 게 아닐까. 쓰이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처럼. 아무도 쓰지 않은 글이 뚝 하고 스스로 써져서.
이런 상상까지 하다가 나는 그만두었다. 그리고 언제나 항상 하던 편집 일로 돌아갔다. 나와 대화하고 밥을 먹기도 한, 정체가 확실한 누군가가 쓰고 번역하고 윤문한 글을 프린트해서 교정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펜을 잡고 교정을 했다. 때로는 밭에서 자갈을 골라내듯이, 때로는 구멍 난 천을 깁듯이, 때로는 탁한 유리구슬을 문질러 닦듯이.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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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는 게 재밌어>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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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만수청에서 출간한 『노들 노래 공장 노래집』 마지막 면에는 「사는 게 재밌다」라는 곡이 실려 있다. 4분의 4 박자, 스무 마디로 이루어진 이 곡은 <사는 게 재밌진 않지> 하며 시작한다. 제목이 <사는 게 재밌다>면서 시작부터 <사는 게 재밌진 않지>라고 하는 점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노들 노래 공장 노래집』은 권리 중심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이하 권리 중심 일자리)의 노동자들이 노들 야학에서 함께 만든 노래를 기록한 책이다. 음악가 이민휘가 강사로 자원해 노동자들의 말과 소리를 듣고 모으고 정리했다.
권리 중심 일자리라는 건 뭘까? 중증 장애인이 노동 주체가 되어 UN 장애인 권리 협약의 내용과 목적을 홍보하는 일을 하는 자리로, 과업은 거리에 나가 캠페인을 벌이고, 문화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장애인 인권 강의를 여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확장된 노동의 정의 안에서는 자기 이야기로 노래를 지어 부르는 일도 당연히 노동이다. 그리고 그 노동은 <사는 게 재밌진 않지>만 <그러나 재미도 있지>라고 덧붙일 수 있는 이유가 되어 주기도 한다.
♪사는 게 재밌진 않지, 그러나 재미도 있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과 노래 부를 때♪ ― 노들 노래 공장, 「사는 게 재밌다」 중에서
앞의 두 문장은 좌우명으로 쓰다가 묘비명으로 재활용하면 딱 좋겠다고 생각한다. 묘비 주인을 빌리 필그림이라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커트 보니것 소설 『제5도살장』의 주인공인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 드레스덴 공습을 겪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 귀향한 뒤 검안사이자 사업가로 성공한다. 물론 그는 우연히 트라팔마도어 행성에 방문한 이후 시간에서 풀려나므로 그 모든 일은 앞뒤 없이 벌어지는데, 이를테면 포로 수용소의 샤워 꼭지에서 쏟아져 나와 살갗을 찌르는 물을 맞다가 방금 어머니가 목욕시켜 준 아기가 되어서는 보송한 수건으로 몸이 감싸이는 식이다. 기분이 좋아진 빌리는 <까르륵, 구구> 하고 그 순간 내게는 갑자기 터무니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그 생각의 진실성에 깜짝 놀랐다. 그거면 빌리 필그림에게 좋은 묘비명이 될 것 같았다 — 또 나에게도>.(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156면, 강조는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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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157면에 실린 묘비 그림을 패러디해 봤다. 원 문장은 <EVERYTHING WAS BEAUTIFUL,
AND NOTHING HURT(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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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고 싶어요, 혼자 자고 싶어요♪ ♪소보로빵 먹을 거예요, 나가고 싶어요♪ ― 노들 노래 공장, 「자립하고 싶어요」 중에서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에는 「혼자 있고 싶어」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두꺼비가 개구리 집에 가보니 친구는 없고 <나는 혼자 있고 싶단다>라고 적힌 쪽지만 보인다. 두꺼비는 개구리를 찾아 헤매다 강 한가운데 작은 섬에 혼자 있는 개구리를 발견한다. <개굴아!> 외쳐 보지만 그 소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개구리에게 닿지 않는다. 두꺼비는 거북이 등에 올라타 강을 건너려다 물에 첨벙 빠지고, 개구리는 두꺼비를 건져 섬으로 끌어올린다. 알고 보니 개구리는 두꺼비가 싫어졌다거나 자기 자신이 싫어진 것이 아니었다. 개구리는 말한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눈부신 햇살을 보자 기분이 좋았어. 내가 개구리여서 기분이 좋았어. 두꺼비 네가 친구여서 기분이 좋았어. 나는 혼자 있고 싶었어. 얼마나 좋은지 혼자 생각하고 싶었거든. ―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 62면
어떤 이유에서든 혼자 있고 싶을 땐 개구리처럼 혼자 있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혼자 외출하고, 혼자 가게에 가고, 혼자만의 방을 취향대로 꾸리고, 혼자 취미 생활을 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을 하거나 안 하는 것. 한 사람이 그런 인간적인 활동들을 할 수 있으려면 제도와 제도 안에서 협업하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를테면 중증 장애인에게는 살림이나 이동을 비롯한 일상생활을 돕는 활동 지원사와 지역 사회 적응을 돕는 코디네이터, 그리고 물론 함께 일하거나 놀 동료와 친구가 필요하다. 혼자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곧 상호 돌봄과 사회적 지원의 연결망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거기에 <내가 개구리여서 기분이 좋았어>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는 올해 권리 중심 일자리 사업을 돌연 폐지하고 중증 장애인 노동자 4백여 명과 전담 인력을 해고했다. 노들 노래 공장의 노동자들은 일터를 잃었다. <그렇게 가는 거지So it goes.> 보니것이 되풀이해 말한다. 어어, 어디로TT, To where? 내가 묻는다. 끝으로 노들 노래 공장에서 생산된 것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사를 소개하고 싶다. 나는 요즘 이 가사를 자주 흥얼거린다. 치약을 짤 때, 설거지할 때, 날파리 떼를 헤치며 강가를 산책할 때, 잠들기 전 이불을 덮고.......
♪쉽지 않지만 잘 만들어요♪ ♪잘 안 될 때는 노력합니다♪ ― 노들 노래 공장, 「노들 노래 공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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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 2 (등장순)
「사는 게 재밌다」 (노들 노래 공장, 2023)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2016)
*이 책에서 <So it goes>는 <뭐 그런 거지>로 번역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문맥상 과거 번역문(박웅희 역)을 사용했다.
「자립하고 싶어요」 (노들 노래 공장, 2023)
아널드 로벨,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 엄혜숙 옮김(비룡소, 1996)
「노들 노래 공장」 (노들 노래 공장,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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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는 에세이집 『낯선 사람에게 말 걸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은 작가와 독자, 낯선 두 사람이 지극히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요. <저는 영원히 아는 사이가 되지 못할 사람들과 평생 대화를 나눠 왔으며, 앞으로도, 숨이 멎는 날까지 계속해서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살다가 우리 곁을 떠난 폴 오스터를 기리며 3호를 마무리합니다. 6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다시 만나요. 이만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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